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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 일상 속 ’악의 평범성’을 해석하다

by 감상중년 2025. 7. 7.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일상 속 ‘악의 평범성’을 해석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일상 속 ‘악의 평범성’을 해석하다”

 
조너선 글레이저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전통적인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조용한 공포를 담은 수작으로, 믿기 힘든 잔혹함이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일상의 초상을 정밀하게 그려냅니다. 거리감 있는 연출, 고정된 카메라, 그리고 오싹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다음과 같은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악이 일상 속에 이렇게도 편안하게 스며들 수 있을까?”


한나 아렌트와 악의 평범성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표현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하며 처음 제시한 개념입니다. 그녀는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핵심 인물인 아이히만이 괴물이 아닌, 그냥 평범한 관료처럼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 개념을 생생하게 시각화합니다. 대량 학살의 가해자들은 사악한 악당이 아니라, 정원을 가꾸고, 일요일 외출복을 고르고, 자녀 교육을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학살의 그림자 아래 존재하는 일상의 정상성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 루돌프 회스와 그의 아내 헤트비히가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수용소 바로 옆 주택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영화는 폭력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공백과 사운드를 통해 공포를 전달합니다. 아이들이 정원에서 뛰노는 동안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헤트비히는 재가 눈처럼 내리는 가운데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습니다. 이런 병치는 영화의 핵심적 힘이며, 악이 ‘정상성’에 의해 어떻게 보이지 않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도덕적 맹목의 구조화

회스 가족의 삶은 물리적·심리적 ‘벽’으로 구분됩니다. 수용소는 정원 담장 바로 너머에 있지만, 정서적·도덕적 거리감은 엄청납니다. 영화의 카메라는 결코 그 벽을 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매우 의도적이며 정치적인 연출입니다. 글레이저는 행동의 죄악이 아닌, 무관심과 외면이라는 ‘부재의 죄악’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사회 전체가 눈앞의 잔혹함을 외면할 수 있었던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진실을 드러내는 ‘소리’

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요소는 시각이 아닌 사운드 디자인입니다. 기차, 화로, 총성, 비명 이 모든 음향은 영화 내내 배경에 흐릅니다. 관객은 아무리 고요한 장면 속에서도 그 소리를 듣게 됩니다. 글레이저는 폭력을 보여주지 않고 들려주는 방식으로 관객의 안일함을 깨뜨립니다. 소리는 관객을 편안하게 두지 않으며,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을 꾸준히 주입합니다.


낯설지 않은 공포

대부분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피해자나 저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일상 속에서 침묵, 관습, 안락함을 통해 공포에 기여한 보통 사람들을 조명합니다. 가장 무서운 사실은 이들이 괴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냉정한 관찰자는 결국 관객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우리 역시 어떤 부정의나 고통을 ‘배경 소음’으로 치부하며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조용한 대면의 걸작입니다. 멜로드라마를 철저히 배제하고, 더 무서운 것을 보여줍니다—공포가 일상이 되고, 폭력이 배경음이 되며, 악이 문명이라는 옷을 입는 현실을요. ‘악의 평범성’은 과거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입니다. 때때로 악은 앞치마를 두르고 정원을 돌보며 다가옵니다